할머니가 되었어요?!

설날연휴를 맞아 아이들과 부산에 있는 시댁을 다녀왔다. 추석과 달리 설에는 늘 해가 바뀌니 '나이'가 중요한 화제 거리가 되고 누가 벌써 그렇게 컸네, 우리가 늙었네 하는 놀라움과 넋두리는 그리 새로울 것도 없는 명절의 레파토리였다.

그런데 여느 설과 달리 올해는 좀 충격을 받았다.

돌아가신 시아버님은 3형제중 막내이셨기 때문에 항상 명절때면 큰집 차례를 지내고서야 우리 시댁으로 와서 시아버님 차례를 지낼수가 있다. 그나마도 몇년전까지는 종가집을 들러 큰아버님 댁(정확히는 큰 아주버님댁이지만)을 들러 오던 것을 종가집을 거치는 것을 간소화하여 조금 쉬워진 것이다. 어쨌든 마지막 종착역인 우리 시댁에 머물러서는 보통 손님들이 긴장을 풀고 본격적으로 술상을 차리게 되기 때문에 늘 사람으로 북적거린다.  몇년만에 만난 사촌 조카들은 내가 처음 시집 갔을 때만해도 중, 고등학생이었다. 그런 조카들이 이제 서른을 훌쩍 넘겼고 그 중에 둘째가 결혼을 해서 그 딸이 아장아장 걷고 있었다. (서울-부산 떨어져 지내다보니 처음으로 올해 얼굴 마주하고 인사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둘째 조카의 딸이 내게는 손주벌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내가 할머니가 된 것!

나이 사십을 넘을 때만해도 좀 어색하고 잘 믿어지지 않기도 했지만 이번처럼 황당한 기분은 아니었다. 아니, 할머니라니!! 물론 촌수상으로 그런 것이지 내가 '할머니'라는 단어에 맞을 만큼 나이가 든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알면서도 순간적으로 너무 충격적이었다.

시어머님과 시아주버님, 동서형님도 나이를 더해가는 티가 역력하고 무엇보다 조카들과, 우리 애들이 훌쩍 커버리는 것을 매년, 혹은 몇달사이에도 쉽게 느끼면서 내 자신이 나이 들고 늙어가는 것은 애써 받아들이지 않으려 했었던 것같다.

세월은 정말 무심히도 흐른다. 그 세월의 나무그늘 아래 우리네 인생이 어떤 일들을 겪고 어떤 순간 순간을 보내는가에 관계없이, 얼마나 잘 살아 보겠다고, 혹은 뭔가 이뤄 보겠다고 아둥바둥 몸부림 치는가에 아랑곳하지 않고 무심히 흘러, 인생의 끝을 향해 우리를 몰고 간다.

아장 아장 걷고 있는 그 작고 귀여운 아이가 어른이 될때쯤, 나느 무심한 세월에 비로서 손을 들고 또한 무심하게 삶을 정리하려 하겠지. 혹은 그 이전에 세상을 떠나게 될런지도 모를 일이다.

새삼스레 삶의 모든 것들이 무상하다는 생각도 들고, 어쩌면 그래서 지금 이순간이 가장 중요할지도 모른다는 책에서 늘 읽었던 소중한 진리를 내 마음속에서 발견하게 되었다. 이렇게 세월이 가져다 준 또 다른 한해를 나는 맞게 되었다.

by easysun | 2008/02/09 17:22 | H#1 : 일상사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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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inuit at 2008/02/10 19:16
음 할머니라..
이제 선을 명확히 그을 때가 왔군요. 누님이라 하지 않겠습니다.
easysun 여사님 ^^;;
Commented by easysun at 2008/02/11 09:57
아이, 왜 이러세요! 같이 늙어가는 사람들끼리.. 서로 위안을 줘야죠..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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