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A를 꿈꾸는 당신에게

2002년 7월. 서울은 월드컵 열기로 온 도시가 흥분을 잠재우지 못할 즈음에 나는 스스로의 결정으로 서울에 있는 모든 것 - 가족과 6년간 내가 온 몸과 마음을 바쳐 기반을 닦은 회사, 친구들, 그 때까지는 확실히 인식하지 못했던 나의 사회적 존재감, 기타 등등 -을 남겨두고 유학길에 올랐다.

내가 미국에 있는 Business School에 MBA 프로그램 입학허가서를 받기 위해 준비를 시작한 것은 2000년 7월이었으니 준비를 시작한지 정확히 2년만이었다. 2000년 GMAT 공부를 시작해서, (회사에서는 아무도 몰랐으므로) 퇴근후 부터 보통 새벽 1, 2시까지 졸음으로 꾸벅이는 머리를 세워가며 오기를 부렸을 때만해도 내 인생의 키를 돌리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사실, 1년 먼저 떠날수도 있었다. 2001년 초에 카네기 멜론 대학의 입학허가서를 받았지만, 마침 글로벌 PR 회사로부터 M&A Proposal을 받았고, 내가 공들여 닦아온 터전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계기라고 믿어 카네기 멜론 입학을 포기했다. 어쩌면 그것이 내 고집을 꺽기 위한 운명의 제동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경기침체로 글로벌 회사의 전세계적으로 모든 M&A 딜이 홀딩되고 계약서 작성 직전까지 갔던 우리의 계약도 당분간 보류되었다. 그때가 2001년 9월. 나는 그때 극도의 스트레스로 괴로워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회사의 도약을 위해 내 개인적인 희생을 결정한 것이 결국은 이도 저도 이루지 못하는 안까가운 결과를 낳았던 것이었다. 부랴부랴 1년전 써놓은 에세이를 가다듬어 1차 지원기한이 끝나지 않은 몇개 학교에 지원서를 냈다. 대부분은 뉴욕에 있는 학교 였다. 내가 USC에 원서를 낸 것은 단지, 두가지 이유이다. USC가 Asian 비율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는 점, 그리고 전년도 합격자들의 평균 GMAT 성적이 내가 받은 점수와 일치했다는 점. 솔직히 USC를 그 이전까지 알지 못했다. 뉴욕에 있는 학교들이 모두 Top 10에 드는 명문인 만큼 하나쯤 20위권에서 골라야 한다는 '안심 논리'도 작용했다.

결과적으로 뉴욕에 있는 학교들로부터는 모두 불합격 통지(일명 '딩 레터(Ding Letter)'라고 함)를 받았고 2002년 4월에, 무슨 이유에서인지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늦게 USC 합격 소식을 전해 들었다.

어쩌면 그때 딩 레터를 보냈던 탑 10 학교들의 나에 대한 배려를 다시 한번 되새길 필요가 있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보다 더한 시련도 이겨 내었다. 사실 나는 비자를 받는 과정에서 아주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거부를 당한 일이 있었다. 아주 드문 일이지만 나를 인터뷰 했던 사람은 50대가 훨씬 넘어보이는 한국인 여성이었는데, 내가 대학을 졸업한 것이 너무 오래 되었고 (비자 거절 이유로는 너무 매정하지 않은가. 만학의 용기는 칭찬의 대상인 것을), 학부에서는 영문학을 전공한 내가 전공을 바꿔 MBA를 지원한 것도 이해할 수 없고 (아니, 우리나라에서 학부 전공이 뭐 그리 중요하단 말인가, 특히나 80년대 초반 학번 가운데 영문과 졸업자 중에서 전공 살려 일하는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뭐 그런 이유로 비자 신청 이유가  의심스러워 승인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USC의 입학허가를 받았던 것과 I-20를 강조했다. 너무나 당혹스러운 것은 그 분은 USC라는 학교를 모르고 있었다. Top10은 아니어도 20위권에는 드는, 나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사학이건만... 어쨌거나 나는 내가 공부를 해야하는 이유와, 주변 사람들의 탄원서(?)와 신문에 난 기사들과, 내가 운영하는 회사의 대차대조표등 기타 모든 자료를 꼼꼼이 만들고, 사돈의 팔촌까지 인맥을 동원해 가까스로 비자를 받아 내었다. 정말 그때는 운명이 나의 향학열을 왜 그렇게 막아 서는지에 대해 생각할 여유가 조금도 없었다.


어쨌든 그해 7월 월드컵 열기를 뒤로 하고, 그리운 얼굴들, 삼십년 넘게 살아온 내 추억들을 뒤로 하고, 나는 LA행 비행기를 탔다. 그 때부터 혼자 떠나는, 내 스스로가 나의 보호자가 되어야 하는 긴 여정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4년간 (MBA 이후 LA에서 시작한 모바일 컨텐츠 비즈니스 때문에 내 귀국은 2년이 늦춰졌다) 미국에서 지낸후 지난 4월에야 다시 돌아왔다. 그 후 많은 사람들이 내게 MBA, 혹은 공부를 위해 미국 유학을 가고 싶다고 조언을 구하곤 했다. 만약 학생이라면, 가서 햄버거 가게 아르바이트를 하더라도, 꼭 다녀오라고 권한다. 그러나 이 곳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더군다나 사회적인 지위를 쌓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강력하게 말린다.

그렇다면 내가 나의 유학 결심과 4년간의 미국 생활을 후회한다는 뜻인가? 사실 그렇지는 않다. 많은 것을 얻었지만, 내가 얻으려던 것보다는 조금은 다른 것들을 얻었고, 또 예상치 못했던 많은 것을 잃었다. '경영학적' 관점에서는 ROI (투자대비수익)가 좋지 않은 결정이었고, '인문학적' 관점에서는 인생의 후회를 없앨 수 있는, 그리고 여러가지 힘든 경험을 많이 함으로써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었던 좋은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굳이 내가 늦깍이 유학 지망생들을 말리며 다니는 것은, 지금 그들이 원하는 것을 유학으로 모두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생각지 못하는 많은 것들을 틀림없이 잃을 것이기 때문이다.

4년간의 미국 생활은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힘든 경험을 압축적으로 함으로써 많은 생각들을 하게 하고, 많은 생각들을 바꿔 놓았다. 많은 남자들이, 특히 전방에서 군생활을 한 사람일수록, 오래도록 군대 얘기를 하는 것처럼, 나도 오래도록 미국 생활을 맘 속에 떠올릴 것 같다.

블로그에 단순히 개인적이기만 얘기들은 가능하면 올리지 않으려 하면서도 4년간의 미국 생활의 경험들을 틈틈이 써야 겠다고 생각한 것도, 그 시간이 갖는 내 인생에서의 비중 때문이다.

지금, 많은 것을 포기하고라도 MBA 학위를 위해 유학을 결심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조금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것도 바램일 수 있겠다.

 

by easysun | 2006/11/12 22:40 | H#9 : 4년간의 유학생활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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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junycap at 2006/11/13 01:19
사장님이 유학을 발표하셨던 당시가 어렴풋이 기억납니다. 2002년 월드컵 당시 우리나라 국가대표팀을 드림 직원들이 근무시간에 대회의실에 대거 모여 빔프로젝트를 함께 시청하면서 응원했던 기억, 남 몰래 조금씩 조금씩 준비해오시던 MBA 유학의 꿈을 발표하며 드리머들에게 여러가지 의미의 충격을 주셨던 기억, 드리머들과 이런저런 이야기하며 술잔을 함께 기울였던 기억 등

예전에 전략기획팀 소속으로 드림에서 근무를 한 적이 있습니다. 여러가지 업무를 진행했던 시기에는 야근도 많이 하고, 솔루션도 별로 안보이고, 피곤한 시기였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개인적으로 많은 성장이 있었다고 봅니다. 국내PR회사들이 경영 시스템의 체계화가 필요했던 시기였던지라 드림 경영진과 다양한 주제로 논의를 하고 이를 실현해 나가던 재미가 솔솔 했었죠. 사장님 글을 읽으니 예전 생각이 조각조각 나네요.

아무튼 후배들에게 즐겨 쓰는 단어가 있습니다. '일장일단'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이 있는 법,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는 법. 그래도 드림이라는 회사를 창업하고, 유학을 가고, 미국에서 사업을 하고, 다시 전문경영인으로 업계에 컴백을 하고 일련의 과정속에서 사장님께서는 드리머로서 많은 드림을 실현해나가시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많은 업계 후배들이 케이스 스터디할 수 있도록 멋진 드리머의 모습을 보여주시리라 믿쉼다.
Commented at 2006/11/13 08:37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이승환 at 2006/11/13 20:38
으음... 고생하는 것을 전혀 모르는 저로써는 그냥 멋지게만 느껴집니다 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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